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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elegy40, 나는 산에서 소외된 생활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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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에서 1974년동백섬에 인어상설치 

해운대elegy40, 나는 산에서 소외된 생활도 싫었다.


그러나 나는 바다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산으로 간 것이 아니고 해운대서 전라도로 갔다가 다시 고향간다고 기차를 무임승차하고 
가다가 영동역에서 잡혀서 강제로 하차시켜 역원에게 인게되었다. 
인계되어도 차비를 낼 수 있는 돈이 없어 한나절 철로에 풀을 뽑는 일을 해주고 짜장면도 얻어 먹고 풀려났다. 
그곳에서 남으로 남으로 가니 무주도 나오고 거창도 나오고 함양도 나오고 산청도 나오기도 하였었다 
그러다가 떠돌이 할아버지를 만나 장날에는 쌀 빼러가고 산에서는 땅꾼으로 생활하기에 이러렀다 


7, 나는 산에서 소외된 생활도 싫었다. 

노출된 바다가 싫어서 산으로 들어 갔는데 그곳 생활이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계급은 있었다. 나는 계급사회가 싫었다. 할아버지가 뱀에 물려 죽고는 
갈 곳이 없어 화엄사 절을 찿아 그곳에서 '부목'이라는 직책으로 불 때는 일을 많이 했다. 
먹기위해서 아니 숨어서 생존하기 위해서 절간을 전전했었다. 
화엄사 같은 곳은 저녁이면 산에 벌목꾼을 잡기위해 나무지키러 산으로 갔었다. 
벌목꾼들이 도끼를 들고 덤빌 때는 우리는 사정없이 도망하기도 했었다. 
그 때 벌목꾼들은 먹고 살기위해서 수십명씩 떼를 지어 밤에만 절 소유의 소나무를 
장작을 만들어 팔기위해 절소유의 소나무를 베기위해 드나들던 때였다. 
절간에서 공부도 못하고 일만하며 외롭게 소외되었었다. 
성장과정에서 소외된 과정을 너무 격은 나에게는 커서까지 소외를 당하는 것이 싫어서 다시 하산하였다. 
하산하여 몇년간 노동을 더 하고 공부 할 기회를 얻어 열심히 서당에서 한학을 하게 되었다. 
4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나니 똥통 대학이지만 대학졸업장도 취득하였다. 
그뒤 서당 훈장노릇도 몇 군데 하고 모 단체에서 재무과장, 건설과장, 공익과장,
 청소년훈련원 원장직을 끝으로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종덕훈련원을 개원하고 나는 그당시 대학가에서 의식화 훈련을 주도하며 
기관원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 문기신 신부가 북한을 다녀와서 대학가에서 <북한의 새>라는 슬라이드를 할 때 
나는 대학에서 방송과 교수인 친구이 권유로 <한국공산주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다
 다시 안기부에 잽혀가서 두번째 고역을 치루었다. 

구 뒤 모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열과 성을 다하여 잘나가던 시절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낫었다. 
출세에는 시기질투가 따르는 법이라 그곳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실망하여떠나게 되었다. 
불의를 못보는 성품인지라 평소 고산등반으로 귀가 좋지 않았는데 너무 귀가 막힐 노릇을 당하여 
고막까지 터지는 사건이 생겨서 
멀미와 구역질을 한달 이상하고 병원에서 퇴원하고 휴양을 하러 나셨다. 
남한에서 가장 환경이 좋은 곳을 찿아 들어 온 곳이 이곳 양양군 낙산이었다 
내가 하산하게된 사연과 내가 바다와 인연을 멀리하고 산으로 들어간 이유중에는 몇가지가 더 있고 
의식화 운동을 시키기 위해 <종덕훈련원>을 설립하고 강의도 많이 했다. 
그 부산물로 다음카페 "역사학교(해방전후사)"를 만들었고 
한학을 하면서 얻은 부산물로 서당(書堂)이라는 카페와 불법연구회 카페도 만들었다. 
때가 되면 더 밝히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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